늦은 밤, 가족식사를 마치고 잠깐 회사에 들러 물 마시고 숨 돌리고 집에 돌아오는 길은 한산하다. 이 시간대에는 늘 그렇다. 신호를 통과할 때 정지선을 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노란 불이 들어오는 경우가 있는데, 요즘은 좀 자주 그런 일이 발생한다. 쓸데 없이 신경이 쓰인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매콤한 술 냄새가 난다. 이 시간대에는 늘 그렇다. 꽤 나는 걸 보니 많이 드셨거나, 여러명이 함께 탔었나보다. 언젠가 누군가가 내 냄새를 맡고 비슷한 생각을 했으려나, 생각한다. 내가 냄새를 남긴다는 것 자체를 믿고 싶지 않지만.
마지막 날, 첫 날. 해가 바뀌는 것 뿐, 호들갑 떨 필요는 없다. 모든 것은 여전히 일상적이고 당연하다. 노란 불이 신경 쓰이는 것은 그대로이고, 늦은 밤 술 마시고 들어오는 누군가도 늘 계신다. 미루던 일들은 하루 더 늦어졌을 뿐이고, 나이는 고작 하루 늘었을 뿐이라 나는 그다지 더 지혜로워지지 않은 기분이다. 특별한 것은 별로 없다. 이것저것 의미부여하다가는 나만 피곤하겠지.
보통 나는 월요일에 재활용 쓰레기를 버린다. 새해가 밝아온다지만 나는 재활용 쓰레기를 버린다. 영하의 날씨라지만 나는 추위를 별로 타지 않으니 대충 입고 나가도 돼. 바로 후회했다. 거봐. 나는 지혜로워지지 않았다.
연말공연 이후 맥주가 좀 늘었나, 빈 캔의 개수가 좀 많아진 것 같다. 줄여봐야지. 같은 생각을 꼭 1년 전에 했던 것 같다. 흠.
맑은 밤하늘, 하얀 입김 사이로 베텔기우스-시리우스-프로키온이 눈치없이 밝게 정삼각형을 이루며 빛나고 있다. 미세먼지 때문에 요즘 달이나 별이 또렷하게 보이는 날이 꽤 줄었다. 소중한 밤하늘이다. 흠.
간만에 새 앨범도 내고, 우주복도 입어보고. 체육관에서 방송 녹화를 겸하며 녹음도 해보고. 재평이가 나보다 땀을 많이 흘린 공연도 있었고. 무대가 좁을 만큼 많은 친구들을 모시고 연주해보기도 하고. 새로운 일도, 감사한 일도 참 많은 한해였구나, 생각한다. 올해는 뭘 할까. 흠...
아. 올해도 실패다. 오늘밤 엄청 특별하잖아. 엄청 의미부여하고 있고 다짐해보고 있고 계획해보고 있잖아. 해피 새해! 잘 지내봅시다!
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