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NKING SPOT

2011/08/22 16:26
고민으로 마음이 분주해지고 혼자 있고 싶거나 하면
많은 사람들은 버릇처럼 자신만의 장소를 찾아가곤 한다.
심지어 나의 오랜 친구인 Winnie-the-Pooh도
자신이 마음껏 생각할 수 있는 장소를 정해두고
그 곳에서 인생을 돌아보고 당면한 문제들을 고찰하곤 한다.
ThinkThinkThink

Think! Think! Think!

Thoughtful Spot

Pooh's thoughtful Spot

무결점 야밤장미 척척박사인 나라지만,
나도 알고보면 평범한 사람인지라
고민 많아지고 힘들 때가 있기 마련이다.

대학 7년-_-간 자주 찾던 나의 스팟(SPOT)이 있다.
멋진 곳은 아니지만, 학교 담장 근처 인적이 드문 곳
3층(?) 건물 측면에 위치한 나의 스팟은 학교 담장까지 이어지는
드넓은 풀밭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프리미엄 뷰를 제공한다.
내가 아니면 아무도 앉을 수 없는 최고급 의자도 준비되어 있고.
그 곳에서 기타도 치고 맥주도 마시고 가만히 앉아있기도 하고.
가장 친한 친구들은 한 두번씩 데리고 갔던 것 같기도 하다.
추억이 많이 서린 곳이다.

며칠 전, 오랜만에 찾아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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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스팟

공사판이다.
공사장 주위에는 담장이 높게 쳐져 있었다. 풀밭 없어졌다.
대신 자갈을 깔아 놓았다.
기계문명과 개발주의자들의 회색빛 마음에는
나의 추억과 스펙타클 뷰 따위는 고려대상이 아니었나보다.

다행히도 저기 나의 프리미엄 의자가 보이긴 한다.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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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아니면 앉을 엄두도 못 내지

솔직히 '빠께쓰'다. 무슨 수도꼭지를 가리는 용도로 엎어놓은 것 같은데,
정확한 디테일은 잊은 지 오래다. 역시 나 아니면 앉을 수 없다.

앉아보았더니, 그저 잿빛 담장이 눈앞에 펼쳐져 면벽수행을 방불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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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년면벽좌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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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가까워 담장인줄도 모르겠다


아쉽다.
페퍼톤스가 태동하던, 드넓은 풀밭을 사모하는 나의 마음은
이 곳에서는 더 이상 길러질 수가 없다.

그 풀밭이, 그 스펙타클 뷰가 나의 소유는 아니었지만,
빼앗겼다는 기분이 들었다.
내 것이 아닌 것도 사라지면 박탈감이 대단하구나, 싶었다.
그리고 보면 언젠가부터 그 어디에도
쉽게 애정을 주지 못하게 되어버린 나다
덕분에 냉철함과 합리성, 그리고 논리를 얻었지.

앞이 안 보이니 자연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게 된다
스노우보드 자켓 입고 제주도에서 바이킹 타던 때가 엊그제인데
하늘이 저만치도 높아졌구나
시간이 참 빠르구나
더 예쁘게 살고 싶다는 생각도
더 열심히 살고 싶다는 생각도
좀 하고 돌아왔습니다

오늘 정말 오랜만에 긴 바지를 입었습니다
커피 마시러 가야겠네요
가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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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된 사진. (지금은 완전 다른 사람)